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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 2017년 암을 선고받아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이 목전에 와도 글을 쓰겠다"며 마지막 집필에 몰두해왔다.



21년8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어령 교수. 



김지수 조선비즈 기자가 묻고, 이 교수가 답한 인터뷰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 교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라고 회고했다.


'성공한 인생을 사셨다고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남들이 보는 이 아무개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는데, 나는 사실상 겸손이 아니라 실패한 삶을 살았구나. 그거를 느낀다"고 말했다.이어 "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고 설명했다.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가 암 투병 끝에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상 1934년생)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이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부여고를 나와 서울대와 동(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1972∼73년에는 경향신문 파리특파원으로 활동했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를,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201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됐다.  


  20대 초반에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한 '우상의 파괴'를 1956년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하며 평단에 데뷔했다. 

문학의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고인은 6공화국 때 문화공보부가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되면서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에 임명됐다.  


  문화예술인으로는 처음으로 문화부를 이끈 고인은 국립국어연구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전통공방촌 건립, 도서관업무 이관 등 4대 사업으로 문화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대본을 집필했던 고인은 개막식에서 '굴렁쇠 소년'을 연출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10월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조시(弔詩)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 꽃 하나의 의미'로 추모하고 국가장의 유족 측 장례위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0)를 비롯해 '축소지향의 일본인'(1984),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디지로그'(2006),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그는 '디지로그'를 통해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세상을 말하며 비빔밥과 같은 우리 문화와 정서에서 조화의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고인은 또 개신교 신앙을 고백한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를 출간하면서 저술 활동 50년 만에 새로운 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에서 검사로 활동하다 개신교 신앙을 갖게 된 딸 이민아 씨에게 닥친 암과 실명 위기, 손자의 질병 등을 겪으면서 세례를 받기도 했다.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 희곡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 등 소설과 희곡, 시집 등도 펴냈다.



  


이 전 장관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저서 집필에 마지막 힘을 쏟았다. 


 고인은 자신을 '이야기꾼'이라 칭하며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를 탐구하는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몰두해왔다. 


12권으로 계획한 시리즈 중 지난해 2월 첫 권인 '너 어디에서 왔니'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고인은 "생과 죽음이 등을 마주 댄 부조리한 삶. 이것이 내 평생의 화두였으며,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 아닌 탄생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또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로 '메멘토 모리'를 펴내는 등 생의 마지막까지 우리 삶의 본질적인 물음에 답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1987년 별세 한 달여 전, 가톨릭 신부에게 물은 24가지 질문에 대해 고인이 자신의 관점으로 답한 책이다. 


 고인은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 검사를 지냈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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